직장, 회사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하다면

사회생활|2019. 9. 25. 09:02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있습니다.

다른 업종으로 이직을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당신 앞의 수많은 선배들이 도전했던 길입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30 대 후반이나 40 대 초반에 직장을 떠나 자신의 일을 하러 나서는 그들은 근본적으로 구도자(求道者)들입니다. 인생의 참된 비밀을 알기 위해 절로 들어가는 사람만이 구도자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사람들 역시 구도자라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여러 선지식을 찾아 길을 나서듯이 당신 또한 참된 인생의 길을 찾아 나선 구도자들인 것이죠.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든, 부귀영화를 쟁취하기 위해서든, 또는 그냥 직장 생활이 갑갑해서든 동기의 차이야 있겠지만 마음을 일으켜 모험의 길로 나선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아울러 결국 그들 모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노상에서 방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구도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구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 역시 그 사람의 팔자이고 운명입니다. 길을 떠날 때의 동기가 허영이든 분수를 몰라서이건 간에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그 모두 결국에 가서 그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것은 삶의 진실이고 비밀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판타지인 '구운몽'에서 생의 온갖 부귀영화를 체험한 후에 도를 깨치게 되는 성진 스님의 길과 직장을 떠나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선 모든 이들이 가는 길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더러는 순조롭게 일이 풀려서 영화를 누리는 이도 있어 구운몽의 성진 스님과 흡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대부분은 길 떠난 후 부귀영화는커녕 찬 바람과 밤이슬을 맞으면서 팍팍해진 무릎을 달래며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가게 됩니다. 길을 간다는 것 자체가 신고(辛苦)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길을 떠나면 어떨까 다짐한 사람들을 보면 동정과 존경의 마음이 먼저 듭니다. 굳센 의지와 튼튼한 다리를 가져야 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의 삶과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이의 삶은 그 근원에서부터 다릅니다.

길을 나섰다는 것 자체가 정도의 차야 있겠지만 결국 고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 천 년 전 인도의 어느 작은 왕국에서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젊은이가 집을 나서 삶의 해탈을 찾았다는 얘기를 알고 있습니다. 또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에서 젊은 예수라는 사내가 길을 떠나 오랜 기간 동안 구도의 길을 걸었던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엄청난 성인으로서 추앙받고 있지만, 사실 30 대 후반에서 40 대 초반에 길을 떠나는 모든 이들 역시 석가나 예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탐욕에 눈이 멀어 길을 나섰다 해도 성인들과 그다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해탈과 삶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정열이나 돈이나 권력의 비밀을 얻고자 하는 정열이나 근원에 있어서 같은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길에서 길을 찾다보면 결국 얻게 되고 만나게 되는 것도 같은 깨침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에 목이 마른 구법승이나 돈에 갈증을 지닌 벤처사업가, 그냥 직장 다니기가 갑갑해서 무작정 길을 떠나는 한심한 젊은이나 그들이 더 나은 삶의 상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동기가 다른 것은 사실 별 상관이 없습니다. 길에서 고생할 것이며 때로는 길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 것이며 처음에 떠나올 때의 의욕과 목표도 길이 주는 고단함과 가르침으로 인해 어느덧 색이 바래다보면 나중에 얻는 것은 동일한 깨침, 즉 한 장소로 인도되도록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비의(秘義)입니다.

이 말은 글쓴이의 철학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무수한 스승들이 가르쳐 온 말이며, 하인리히 짐머가 "인도의 신화와 예술"이라는 저서를 통해 파헤친 삶의 비의와 정확하게 같은 말입니다. 

 



사람이 길을 떠나면 기본적으로 12 년간의 정해진 기간을 채워야 그 방황이 일단락됩니다. 그 중에서 처음의 6년간은 상당히 어렵고 고단한 길을 걸어야 하며, 다음의 6년은 길을 걷는 내공이 생겨서 어느덧 길 가는 것 자체가 즐거워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의 6년을 견뎌내지 못하면 길에서 좌절하여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이 실패였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더러는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처음의 6년간이 시련인 것은 처음에 지녔던 것들이 쓸데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자신감이나 긍지, 몇 푼의 노자(路資) 같은 것들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그것들을 다 버려야 제대로 길을 갈 수 있다는 체득할 때까지 6 년의 세월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길을 가는 이는 결국 길에서 무언가를 얻게 되는 것이지 출발할 때의 준비물이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받침이 되지는 않습니다. 짧은 여행길이라면 돈으로 숙소와 식사를 얻을 수 있겠지만, 긴 여행 그리고 자신의 근원으로 떠나는 긴 여행에서는 결국 길에서 만나는 것들과의 인연 속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실입니다.

 



새로운 길을 걸어가겠다면 6년간은 고생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럴 자신이 있나요?
그리고 당신이 맞이할 어려움, 특히 6년이 지났을 때 아무런 자신과 용기도 남아있지 않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이 전환점이니 그 순간에 좌절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이 말은 진실입니다. 본인이 아무 것도 아니고 지극히 무능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도 존재가치도 없다고 자인하는 그 순간이 바로 그가 일어서는 순간이고 자신의 속에 무궁무진한 생의 활력이 들끓고 있음을 느끼는 시점입니다.

반지의 제왕, 참으로 재미난 모험소설입니다. 그리고 그런 얘기들은 실로 많습니다. 수많은 신화와 영웅담 속에 들어있는 모든 얘기들이 다 같은 것들입니다. 당신이 그런 얘기들을 통해 삶의 비밀을 간접 체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나선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만의 영웅담, 모험담, 판타지 소설의 첫 페이지를 써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연히 직접 체험은 엿보는 것보다 수 천 배 아슬아슬하고 재미있을 것임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세상엔 두 부류 사람이 있습니다. 영움담을 간접 체험하는 자와 자신의 모험담을 직접 써나가는 사람들로 말이죠. 어느 쪽을 택하느냐, 그것은 스스로의 마음에 달린 것이고 또한 그것이 팔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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