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무원, 공기업 퇴사하기 전에 꼭 봐야 할 글

사회생활|2019. 9. 12. 11:53

 

 

 

공무원, 대기업! 

현재 젊은 사람들은 이 두가지가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탄탄대로로 들어섰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 나가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며, 마치 인생길이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순항하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고속도로는 주차장처럼 붐빌 때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런데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아도 자주 일어납니다. 오늘은 젊음의 꿈이 어떻게 해서 큰 잘못도 없이 좌절되는가를 얘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학교 마치고 버젓이 대기업이나 장래가 안정된 정부 공기관이나 공사에 들어가는 경우, 남들은 모두들 부러워 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층층시하에 승진이 엄청나게 밀려있어 도무지 어느 세월에 나도 높은 자리에 한 번 앉아볼까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어 맥이 빠지고 기운이 나질 않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에 들어섰건만 그 길은 온통 차량으로 밀려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런 직장을 몇 년 다니다 보면 도무지 아무런 장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게 됩니다. 늘어서 있는 차량 행렬이 시야를 넘어 한 없이 이어져있으니 말입니다. 성급함은 젊음의 기본 성향인지라 더 이상 못 참고 직장을 옮기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때가 바로 슬그머니 인생의 위기가 찾아드는 순간이 됩니다. 일은 지겹고 단순합니다. 게다가 별 장래가 보이질 않는 가운데, 어디선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옵니다. 보통 제의가 들어온 직장은 다니던 직장보다 규모가 더 작습니다. 하지만 한 직급 올려서 이동할 수도 있고, 급여도 그런대로 기분 나쁘지가 않으니 가일층 충동을 받게 됩니다.
   
그 결과 직장을 옮기면 이는 마치 막힌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빠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그래, 이 길이 좀 더 빨리 서울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고 빠질 때는 기대에 부풀고 쾌감도 수반됩니다. 

 

당장 앞길을 막던 차량의 꽁무니를 따르지 않아도 되니 속이 후련합니다. 그러나 얼마간 속력을 내던 국도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엄청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또 다시 지방도로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지방도로는 무얼 그리 신호등이 많고 길도 좁은지 앞에서 차 한 대만 주춤거려도 더더욱 차가 막힙니다. 이왕지사 이제는 길을 가리지 않고 빠지는 길이 있으면 마구 들어서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달리다 보니 차는 어느 시골집 앞마당에 이르면서 길이 끝나버립니다. 
  
서울로 가던 차량이 후미진 시골집에 당도했으니 그 때서야 후회하면서 기어를 후진으로 놓고 돌아 나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입니다. 남이 보면 웃을 이런 일은 휴가철 고속도로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우리네 인생길에서도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규모도 큰 직장이었는데 갑갑해서 다소 규모가 작은 직장으로 옮겼고 그러다보니 그 직장의 경영상태가 어려워져서 어쩔 수 없이 그만 두고 직장을 찾다보니 더 영세한 직장으로 옮게 갑니다. 

 

아담한 직장이 능력을 발휘하기가 더 좋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막상 일을 하다보니 스스로 별 능력이 없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고 거래 상대방인 대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하다보니 계약관계에서 늘 갑(甲)이 아니라 을(乙)로서의 비애도 고스란히 안아야 합니다. 

 

대기업의 상대방은 나이도 더 어리건만 계약을 위해서는 늘 허리를 굽혀야 하고 접대한답시고 밥을 먹어도 머리 속으로는 영수증 처리가 걱정입니다.
   
울화가 치밀어 처음 직장에 다닐 때 친했던 동기를 찾아가 술을 한 잔 먹다보니 그 친구는 어느새 두어 계단 승진해있다는 것을 알고 더 스트레스 받습니다. 아니 어느새 고속도로상의 그 많던 차량들이 빠져나갔단 말인가 싶은 것입니다.
  
그 친구는 자신보다 능력도 없어 보였고 그래서 그 흔한 스카우트 제의 한 번 받아보지도 못했건만 이미 서울에 당도해있다는 생각만 들고 열심히 장래의 꿈을 찾아 분주하게 노력했던 자신은 작은 중소기업의 영업담당 상무에 불과합니다. 

 

말이 좋아 상무이지 급여는 그 친구의 반도 되질 않으니 더욱 초라해집니다. 그저 피곤하고 고단하기만 합니다. 이쯤 되면 당초 품었던 꿈은 간 곳이 없으니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은 그저 통렬한 페이소스(pathos)일 뿐입니다.

 


  
이런 곤경에 빠진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의 사람들이 글쓴이를 찾아와 자신의 팔자를 놓고 상담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어떤 이는 글쓴이에게 묻습니다. '제가 뭘 그리 잘못했을까요?'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글쓴이는 사실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고 얘기해줍니다. 다만 젊음의 성급함이 죄라면 죄입니다.
  
어떤 이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제라도 다 때려치우고 공부를 다시 하거나 유학을 다녀와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면 어떻겠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 얘기는 이제라도 돌아나가서 고속도로의 출발점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고속도로의 원점으로 돌아간다 해도 지나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 이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같은 지점을 두 번 다시 지날 수가 없는 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유학을 다녀와서 맞이하는 지점이 예전의 그 출발점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신은 현 시점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고, 어쩌면 그 길은 당신만의 길이기도 합니다. 또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으며, 또 다녀온다 해도 확실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삶이란 언제든지 잘못 되었다 싶은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간의 잘못된 누적들이 당신에게는 짐이나 멍에이고 그것이 무겁다 해도 그것을 안고 또 지고 가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또 여자들의 경우 가장 흔한 케이스는 이렇습니다.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연애 한 번 진하게 못해보고 선보고 대충 마음을 정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림하다보니 어느새 40 대 후반이 되어 있습니다. 귓가에는 어느새 희끗한 빛이 어리고 생리는 끊어졌다 말았다 합니다. 아니 벌써 인생의 늦가을이란 말인가 싶은 느낌에 회한(悔恨)만 가득합니다. 
   
가끔씩 낭만적인 연애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껴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영화일 뿐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자신입니다. 이것은 절대 내가 꿈꾸던 삶의 모습은 아니라고 부인해보지만, 장밋빛 인생의 화려함은 이제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홀로 장탄식을 해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통해 큰 성취를 이루고 싶어 하고, 진정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확인하고자 합니다. 이 점 남녀에 있어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성취는 어렵고 지속적이고 농밀한 사랑의 경험 또한 어렵습니다. 


사람은 태어나 힘들게 살다 죽어가는 존재입니다. 누구나 정작 중요한 시기에는 철이 없고 뭘 몰라서 지나쳐버렸고,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달리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나이와 함께 오는 어떤 그 무엇입니다. 여기에 삶의 파라독스가 존재하지만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지혜가 세월과 함께 오는 것이라면, 삶의 진정한 출발점 역시 늦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늦은 출발을 한(恨)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싶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지식은 차고 넘치지만 지혜는 얻기 어려운 법입니다. 지혜를 얻는 길은 단지 두 갈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삶 그 자체이고, 또 하나는 고전(古典)입니다. 

 

고전을 접하지 않아도 살다보면 절로 지혜로워 지지만, 고전을 늘 가까이 곁에 두다보면 더 깊고 심원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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